천주교인천교구영종성당

본당 주요 약사

1965 진신부님 영종성당

영종도 지역에 언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의 셋째 아들 이신규(1794 ~ 1868) 가 기해박해 직후인 1840년 부터 병오박해 때인 1846년까지 영종도에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서, 적어도 19세기 중엽에 이미 영종도에 신자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공식 기록으로는 인천 지역의 첫 본당인 제물포본당(현 답동성당) 이 1889년에 설립되면서 영종도는 답동성당 관할이었습니다. 당시 영종도의 구체적인 교세 상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1898년 2월 답동본당 제 3 대 주임 마라발 신부가 당시 조선교구장인 뮈텔 주교에게 보고한 서신에 따르면, 영종도에서 10 명 정도의 가장이 교리를 배우기를 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영종도 주민들 사이에는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종도 지역에 신자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마라발 신부는 1902년 현재의 영종성당 자리에 공소를 설립합니다. 당시 신자는 47명 이었습니다.

공소 설립 이후 송산과 돌팍재 등지에 신자 수가 증가해서, 1910년 공소 신자들은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강당은 12칸으로 지어졌으며, 공소 예절을 위한 공간과 사제관으로 쓰일 방이 포함된 공간이었습니다. 이 강당은 1970 년대 후반까지 남아있었습니다. 1916년 12월에는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가 영종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 후에도 공소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1955년 9월 송림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영종공소는 송림동본당 관할이 되었습니다. 1965년 6월 송림동본당 3대 주임 파퀘트 신부는 영종공소를 인천교구의 15번째 본당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초대 주임으로는 메리놀 외방선교회의 시노트 야고보 신부(한국명 진필세) 가 부임했습니다. 당시 신자는 1413명이었습니다.

진필세 야고보 신부는 본당 부지(1800편) 를 추가로 매입하였고, 1967년 10월 단층 성당(현재의 구성전) 을 완공했습니다. 이와 함께 인보성체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고, 영종도와 근처 도서지역에 공소를 설립했습니다. 그래서 영종 본당 관할 구역 내에 운서,용유,무의,시도,신도,삼목,뒷골 등 7개 공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진필세 야고보 신부는 12개 병상을 갖춘 '예수성심영종의원' (1965 ~ 1981년 폐원? - 카톨릭대사전에는 76년으로 표기)을 설립하여 영종도 주민들에게 무료로 의료혜택을 제공하였습니다. 또 생활형편이 어려운 신자들에게는 밀가루와 옥수수빵 기름 등의 생필품도 지원하였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활용하기 위해 간척 사업도 펼쳤습니다. 여성들의 생활자립을 위한 양재기술 학원이 운영되기도 하였습니다.

1978 영종마을전경

시노트 야고보 신부의 적극적인 사목 활동으로 본당은 점차 안정되어가는 듯 했지만,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본당의 운영도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1975년 4월에는 본당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야고보 신부가 강제 출국을 당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었던 야고보 신부는 유신헌법철폐를 주장하고, 인혁당 유가족 석방운동에 동참한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신부가 미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한 이 후 본당은 침체되었습니다. 이어 2 대 이준희 신부와 3 대 이성득 신부는 침체된 본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영종본당은 1981년 2월 화수동본당의 공소로 격하되고 말았습니다.

공소로 격하된 후에는 영종지역의 신자들은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84년 7월 15일 영종공소는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4대 주임으로 공소에 거주해오던 예수회 진성만 신부가 부임했습니다. 같은 달 성가소비녀회 분원을 마련한 진서만 신부는 본당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본당의 재정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생활비도 충당하지 못할 만큼 어려웠습니다. 5대 주임 김재수 신부는 정부의 종교 탄압에 대항하다가 군종교구 신부로 전출되었는데, 교구의 사제 부족으로 본당에는 약 4개월간 사제가 부임하지 못했습니다. 1987년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메리놀외방선교회의 리카르도 롤위츠 신부(한국명 노평안)가 사목회를 개편하고, 공소를 순회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4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롤위츠 신부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노인정과 보육원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삼목공소가 부활했으며 수녀들의 전교활동이 활발해지고 기도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본당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종도에는 도시로 출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자층의 노령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영종본당은 정부의 영종도 개발 정책으로 인천국제신공항이 개항하면서 상주 인구가 증가하자 2002년 1월 21일 신공항본당(공항신도시,을왕동,남북동,왕산동,무의동 관할)이 분당되었고, 2004년에는 용유 준본당, 2년 후에는 신도 준본당이 분당되었습니다.

13대 주임신부인 주현철 신부는 새로운 성전의 건립을 위해 2007년 성전신축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성전신축기금을 마련에 동참했습니다. 새 성전은 2008년 3월 공사를 시작하여 14대 주임사제인 강윤회 신부 때 완공되었습니다. 2010년 3월 21일 인천교구장인 최기산 주교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되었습니다.

새 성전은 대지면적 4346m², 연면적 2600m² 에 지하 1층 ~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영종본당 출신 사제는 유두환 프란치스꼬(2013) 신부, 김재우 요셉(2016), 이호석 안셀모(2016, 작은형제회)가 있습니다.

2008 성전건축기공식